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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의 차 한잔

산사의새벽 2009. 11. 13. 12:39

 


 

“녹차는 애인과 같고, 발효차는 마누라와 같습니다.”
자응(慈應) 스님이 녹차와 발효차의 맛을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그걸 아세요?”
일행 중 여자 한 분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 압니다.”
얼굴에 웃음을 띤 자응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칠불사에서 차 공양을 받으며 들었던 자응 스님의 차 이야기를 모아보았습니다.
    
단풍이 곱게 능선을 타고 하동 땅으로 흘러내리는 지리산 자락에 칠불사(七佛寺)가 있습니다. 그곳 사정에 밝지 못해서 화엄사니 쌍계사니 하는 절간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칠불사는 현지에 가서야 유명한 사찰이란 걸 알았습니다. 이 절간이 조선말 다도(茶道)를 정립한 초의선사(艸衣禪師)가 묵으며 수행했던 곳입니다. 그가 이곳에서 만드는 발효차를 그의 저서 「동다송(東茶頌)」에 기록했다는 사실도 그래서 알게 됐습니다. 

 

원래 가을 산사(山寺)는 적막함을 대변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자동차여행 문화가 확산되면서 유명한 산속 절간이 오히려 더 시끄러워진 세상입니다. 그런 시류에도 불구하고 칠불사는 조용한 기운이 감돕니다. 화개장터에서 꼬불꼬불 산길을 타고 자동차가 한없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막다른 길에 차에서 내리면 사찰 건물이 있고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란 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첩첩산중인 것이 지리산의 한복판에 들어선 게 분명합니다. 해발 800미터쯤으로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도 최고 고지에 자리 잡은 절이라고 합니다.

 

칠불사란 이름은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서 수도를 한 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붙여졌다 합니다. 글쎄, 김수로왕의 시대에는 아직 불교가 전래되지 않았다는 걸로 알고 있어 조금 헷갈립니다만 먼 옛날이고 종교의 전파란 게 왕의 즉위처럼 딱 연대를 맞춰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 여기서 그걸 시비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신라 말의 고승 도선(道詵)국사의 「옥룡자결(玉龍自訣)」이란 저술에  의하면 “하동 땅에서 북쪽으로 1백리를 가면 와우형(臥牛形) 명당이 있는데 이곳을 기도처로 삼으면 무수인이 득도할 것”이란 구절이 나올 정도로 명당의 절터로 꼽히는 곳입니다.

 

칠불사는 현판에 쓰인 ‘東國第一禪院’이란 이름처럼 옛날부터 수도승들이 참선도량으로 삼았습니다.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고려와 조선조의 유명한 승려들이 이곳에 머물며 수행했다고 합니다. 선승의 수행처이다 보니 아자방(亞字房)이라는 독특한 구조의 선방(禪房)도 생겼습니다.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가 ‘亞’자 모양의 이중 구들을 만들었는데 그 온돌효과가 뛰어나서 당나라에까지 알려졌고, 지금도 이 아자방이 세계건축사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응 스님은 버금아(亞)자 앞에 입구(口)자를 붙이면 ‘벙어리’(啞)란 뜻이니 아자방에선 말도 안 하고 잠도 아니 자며  수행하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칠불사의 옛 이름은 운상원(雲上院)입니다. 지리산의 그 유명한 운해(雲海)를 생각하면 정말 그럴듯한 이름입니다.

칠불사는 수난도 많았습니다. 임진왜란으로 퇴락했던 가람을 서산대사와 부휴선사가 중수했고, 1800년 실화로 불에 타버린 것이 복구됐는데 1951년 1월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때 국군이 작전상 방화하여

아자방을 포함한 가람 전체가 모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그 후 30년간 칠불사는 세상에서 잊혀진 절간이었습니다. 지금의 사찰 건물은 1978년에 새로 복원하여 지은 것입니다. 그 때 아자방도 남아있는 주춧돌을 토대로 새로 축조했다고 합니다. 

자응 스님이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문을 열고 고즈넉한 낙엽 길을 따라 한참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높은 계단을 올라가니 운상선원(雲上禪院)이란 현판이 걸린 절집이 나타났습니다. 수행승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참선을 하는 곳인데, 하절기와 동절기가 아닌 가을철이라 마침 비어 있었습니다. 운상선원에 다음과 같은 주련(柱聯)이 기둥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구절인데, 자응 스님의 설명으로 당나라 선승 황벽선사(黃蘗禪師)의 게송(偈頌:불덕을 기리는 시구)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塵勞逈脫事非常
緊把繩頭做一場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자응 스님이 우리말로 이렇게 옮겼습니다.
   
“티끌세상 벗어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니
화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할 지어다.
찬 기운이 한번 뼛속을 사무치지 않았다면
어찌 매화가 코 찌르는 향기를 얻었으리오.”    

 

수행하는 자는 부처의 말씀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자응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선승의 마음가짐이야 말할 나위없지만 학생이 공부를 하든, 정치인이 선거를 치르든, 사업가가 투자처를 물색하든 이 게송을 한번쯤 새겨봄직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응 스님이 지리산을 이야기합니다. 지리산의 최고봉은 천왕봉(天王峯:1,900미터)이고 제2봉은 반야봉(般若峯:1,732미터)입니다. 그러면 주봉은 천왕봉일까요? 아니랍니다. 반야봉이 주봉이라는 겁니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일만 권속을 거느리고 상주하는 곳이 지리산인데, 문수보살이 지혜(智慧)로써 많은 이적(異蹟)을 보인다하여 ‘智異山’이란 명칭이 생겨났습니다. 문수보살은 반야, 즉 지혜를 뜻합니다. 그래서 천왕봉은 높기는 하지만 반야봉이 지리산의 주봉이라는 겁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보니 지리산은 이름부터가 불교적입니다. 
 
산사에 해가 지고 그 곱던 단풍도 어둠 속에 잠겼습니다. 초승달이 산 능선으로 기우는 것을 보며 절밥을 한 끼씩 얻어먹고 차 공양을 받았습니다. 자응 스님은 내가 처음 만나본 사람인데 하동 일대에서는 지리산 전통 발효차의 권위자로 유명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스스럼없이 녹차를 애인에, 그리고 발효차를 마누라에 비유하는 여유로운 농담을 할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불교와 다도(茶道)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고 우리가 노상 쓰는 ‘다반사’(茶飯事)라는 말도 불교에서 유래한 뜻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칠불사가 지리산 발효차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선승들이 옛날부터 차를 만들어 마셨던 것은 자응 스님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차가 잠을 쫓는다는 것을 승려들이 일찍 알았나 봅니다. 초의선사가 우리나라 차문화의 고전이라 할 「다신전(茶神傳)」을 칠불사 아자방에서 수행하며 그곳에 소장된 중국책을 참고로 쓰게 됐고, 이를 토대로 「동다송」이 저술된 것도 알게 됐습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게 모두 상식에 속하겠지만 나와 같은 문외한에게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도 현장에서 들어야 제 것이 될 수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자응 스님이 소개해준 「동다송」에는 초의선사가 1828년 칠불사에 기거할 무렵 하동지방의 차 재배현황과 칠불사 승려들이 차 마시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지리산 화개동에 차나무가 사오십리에 걸쳐 자라고 있는데 우리나라 차밭 중에 이보다 넓은 곳은 없다. 칠불선원이 있는데 그곳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이 항상 늦게 늙어 쇠어버린 찻잎을 따서 땔나무 말리듯 햇볕에 말려서 나물국 끓이듯 솥에 달여 마시는데 색을 붉고 탁하며 심히 쓰고 떫다.” 차 만드는 방법이 조악함을 아쉬워하는 대목입니다.

자응 스님은 초의선사의 차의 상미론(嘗味論)을 소개해줬습니다.


“혼자 마시면 신령스럽다.”
“둘이 마시면 한가롭다.”
“셋이 마시면 재미있다.”
“여럿이 마시면 덤덤하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차는 분위기가 좌우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커피 맛에 절어서인지 여럿이 마셔서인지 내 잔의 차 맛은 덤덤하게 느껴졌으니 초의선사의 말이 맞나 봅니다.

자응 스님이 잠시 방을 나가더니 종잇장을 들고 돌아와 낭송했습니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칠불사를 중수했던 부휴당(浮休堂)이 지은 ‘산거잡영(山居雜詠)’과 그가 사명대사에게 지어준 ‘기송운(寄松雲)’이었습니다. 둘 다 차 이야기가 나오고 가을의 상념을 노래한 것이어서 더욱 그날 저녁 분위기에 맞았습니다. 

 

굽어보고 우러러 천지 사이에
잠깐 동안 한 때의 나그네 되었구나
숲을 헤쳐 새로 차를 심고
솥을 씻어 저녁밥을 지어 먹노라

달밤에 밝은 달 희롱하고
가을 산에서 가을 저녁을 보낸다
구름 깊고 또한 물도 깊어
찾는 사람 없어도 스스로 기뻐하네.

 

仰天地間 暫爲一時客 穿林種新茶 洗鼎烹藥石
月夜弄月明 秋山送秋夕 雲深水亦深 自喜無深迹 

 

아침에는 차 잎 따고 저물면 섶나무 줍고
또한 산과(山果)까지 거두니 아주 가난하지는 않다네
향 사르고 홀로 앉아 별다른 일 없으면
정다운 이와 나눌 새 이야기 생각나네. 

 

朝採林茶暮拾薪 又收山果不全貧 焚香獨坐無餘事 思與情人一話新

 

칠불사에서 내려와 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에서 하루 밤을 묵고, 이튿날 새벽 5시에 임간도로를 따라 3시간 정도 아침 산행에 나섰습니다. 나설 때는 캄캄한 밤이었지만 계곡을 타고 내려올 때는 가을 햇살이 화개천 일대를 찬란하게 비췄습니다.

마을마다 언덕마다 아침 이슬을 먹은 차밭이 마치 말갈기를 겹겹이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잘 가꿔진 차밭이 천지에 깔린 것을 보고 참 아름답게 바라본 기억이 있는데, 화개천 일대가 그랬습니다. 차밭을 보면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차를 마시는 것보다는 차밭을 구경하는 게 좋습니다. 

 

하동 하면 박경리 소설 「토지」와 섬진강만 생각하다가 현장에 와서야 지리산의 두 가지 명물, 칠불사와 차밭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단위로 차를 재배하는 전남 보성과 제주 서귀포에서와는 달리 하동은 소규모 차 재배가 주종을 이루는 곳입니다. 하동군에 2,000가구의 차 재배 농가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가구가 소규모 차 농사를 지으니 차 재배가 지역의 화두가 되고, 그래서 다도를 포함한 차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네 어귀마다 ‘차’ ‘茶’ 글자가 들어간 간판이 자주 눈에 띕니다. 역시 독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같은 업종에 참여해야만 산업문화도 다양하게 발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났더니 내가 구경한 것은 차밭뿐이고 내가 들은 것은 차 얘기뿐인 것 같습니다. 자응 스님에게 세뇌당한 것만 같습니다만 기분은 좋습니다. 지리산 자락의 차밭 풍경이 선연히 뇌리에 남습니다. 그리고 내 미각을 점령한 커피 맛이 차 향기에 자리를 양보할지는 모르지만 차를 더 즐기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을 기대해 봅니다. 하동 차문화 체험관 강사가 들려주는 차 마시는 법이 귀에 남아 맴돕니다. “꿀꺽꿀꺽 마시지 말고 살짝 가글하며 삼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