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횡계리 황태 덕장에서
하룻밤 보낸 적이 있습니다.
동해에서 잡아 내장을 제거한 생태를
횡계리 찬 개천물에 씻은 뒤,
두 마리씩 꼬챙이로 코를 꿰어
건조대에 걸어놓고 말립니다.
그런데 대관령이라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밤이 되면 영하 10℃이하로 내려가는
강추위가 몰아치는 곳입니다.
생태는 밤새 꽁꽁 얼어붙었다가
낮에 햇볕이 좀 나면 얼어붙은 몸이 풀립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또 꽁꽁 얼어붙어버립니다.
이렇게 얼었다 풀렸다 하기를 이듬해 봄까지 반복하고 나면,
몸통이 통통하고 황색의 윤기가 나는,
육질이 아주 부드러운 황태가 만들어집니다.
이때의 황태는 육질이 너무 부드러워
산에서 나는 더덕과 비슷하다고
'더덕북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몸통이 통통하고 황색의 윤기가 나는,
육질이 아주 부드러운 황태가 만들어집니다.
이때의 황태는 육질이 너무 부드러워
산에서 나는 더덕과 비슷하다고
'더덕북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때 덕장 주인 내외가 저를 위해
일부러 황태무침을 아침상에 올려주셨는데,
저는 그게 그렇게 부드럽고 고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곧잘 황태무침을 사먹지만
그때처럼 맛있는 황태무침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황태는 왜 그렇게 부드러운 육질과
고소한 맛을 지니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혹독한 시련을
거치고 이겨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처럼 맛있는 황태무침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황태는 왜 그렇게 부드러운 육질과
고소한 맛을 지니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혹독한 시련을
거치고 이겨내었기 때문입니다.
생태를 바닷가에서 말리면 마른 장작처럼
딱딱한 북어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황태는 그렇지 않습니다.
황태는 부드럽습니다.
시련이 없으면 부드러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배추도 봄에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하우스배추'보다
해남 지역에서 한겨울에 재배한 '월동배추'가
당도가 높고 맛도 아주 좋습니다.
그것 또한 겨울이라는 혹독한 시련기를 이겨낸 까닭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것들은
모두 시련을 거친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련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시련을 거치지 않으면 무엇 하나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련을 피하고자 해도
시련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시련 없이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시련 없이는 인생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인생을 형성하는 요소 중에서
결코 빠뜨려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시련입니다.
시련이란 해가 떠서 지는 것만큼이나
불가피한 것입니다.
대나무가 휘어지지 않고 똑바로 자랄 수 있는 것은
줄기의 중간 중간을 끊어주는
시련이라는 마디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